세계 4대 메이저 대회 가운데 유일하게, 윔블던에는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시간이 있다. 바로 오후 11시다.


관중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하고, 승부가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이라도 시계가 밤 11시를 가리키면 경기는 중단된다. 조명이 있는데도, 선수들이 더 뛸 수 있는데도 말이다.


올해도 이 전통은 변하지 않았다. 7일(현지시간) 열린 2026 윔블던 남자 단식 16강전에서 알렉산더 즈베레프는 이르지 레헤츠카를 상대로 세트스코어 2-0으로 앞선 채 3세트 3-3까지 경기를 이어갔지만, 오후 11시 커퓨(curfew) 규정이 적용되면서 경기는 다음 날로 연기됐다.


센터코트 관중석에서는 아쉬움의 야유가 터져 나왔고, 즈베레프 역시 승리를 눈앞에 두고 코트를 떠나야 했다. 밤 11시 '커퓨'는 왜 존재할까?


많은 팬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센터코트에는 이미 개폐식 지붕과 최고 수준의 조명 시설이 갖춰져 있다. 기술적으로는 새벽까지도 경기를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윔블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지역 주민과의 공존이다.

올잉글랜드 클럽(All England Club)은 런던 남서부의 주거지역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2009년 센터코트에 지붕이 설치되면서 야간 경기 개최가 가능해졌지만, 지역 사회와 협의 끝에 오후 11시 이후에는 경기를 진행하지 않는 조건이 마련됐다. 이는 소음과 교통 혼잡을 최소화하기 위한 약속이기도 하다.


선수들도 존중하는 '윔블던의 약속?'

커퓨는 선수들에게도 불편하다. 경기 흐름이 끊기고, 다음 날 다시 몸을 풀어야 한다. 특히 우세한 선수가 리듬을 잃을 수도 있고, 열세였던 선수는 재정비할 시간을 벌기도 한다. 그럼에도 윔블던은 단 한 경기보다 대회의 전통을 우선한다.

실제로 올해 코코 가우프는 벨린다 벤치치를 상대로 커퓨 직전인 오후 10시 58분 승리를 확정하며 간신히 경기를 끝냈다. 경기 후 가우프는 "11시가 되면 바로 경기가 끝나는 줄 알았다"며 윔블던의 독특한 규정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웃으며 이야기하기도 했다.


다른 메이저 대회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 점은 윔블던만의 독특한 문화다. US Open에서는 새벽 2~3시까지 이어지는 경기가 드물지 않고, Australian Open 역시 한밤중 명승부가 자주 펼쳐진다. 반면 윔블던은 경기보다 전통과 지역사회를 우선하는 운영 철학을 고수한다.


세계 최고 권위의 테니스 대회가 지금도 '밤 11시'라는 원칙을 지키는 이유다. 팬들에게는 아쉬운 규정일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런 고집스러운 전통이 15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윔블던을 다른 어떤 메이저 대회와도 구별되는 특별한 무대로 만들어 왔다. 조명이 꺼져서가 아니다. 윔블던은 스스로 멈출 시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