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테니스가 세계무대에서 반가운 결과를 잇달아 전했다. 남자 대표팀은 9월 19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인도를 종합 전적 3-1로 꺾고 사상 처음 데이비스컵 파이널 8 진출을 확정했다. 1960년 첫 출전 이후 66년 만이다. 권순우가 단식 두 경기를 따냈고, 정현이 첫날 두 번째 단식에서 역전승을 보태며 힘을 실었다.
이어 같은 장소에서 열린 코리아오픈에서는 백다연이 21일, 박소현과 구연우가 22일 단식 1회전을 통과했다. 모두 와일드카드로 본선에 출전한 선수들이다. 한국 선수 세 명이 같은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대회에서 동반 2회전에 오른 것은 1984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이후 42년 만이다.
국가대항전의 8강 진출과 개인 투어의 본선 승리는 서로 다른 성과다. 이를 곧바로 한국 테니스 전체의 경쟁력 상승으로 해석하기는 이르다. 다만 두 결과를 관통하는 질문은 분명하다. 선수들이 이번 성과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답을 찾으려면 대회가 끝난 뒤의 일정을 들여다봐야 한다. 선수들은 다음 출전지를 정하고, 이동하고, 훈련하며 다시 경기를 준비한다. 대표팀의 경쟁력도 이 일상에서 만들어진다. 지금의 관심이 투어 경비와 지도 인력, 유망주의 성장 과정까지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
서울의 승리 앞에 있었던 시간
권순우의 데이비스컵 활약에 앞서 챌린저 무대에서의 성과가 있었다. 올해 베트남 판티엣과 광주, 중국 우시에서 우승하며 국제대회 경쟁을 이어갔다. 우시 우승 당시 군 복무 중이던 그는 해외 대회에 출전할 수 있도록 배려한 국군체육부대에 감사를 전했다. 경기력을 발휘할 기회 자체가 선수 개인의 준비만으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여자 선수들의 성장 과정에도 국내외 대회에서 쌓은 경험이 있었다. 구연우는 지난해 포르투갈과 일본의 ITF 대회에서 성적을 거두며 랭킹을 끌어올렸다. 올해도 포르투갈 대회 우승과 미국 에번즈빌 대회 준우승으로 경쟁력을 다졌다. 백다연은 안동과 창원, 타이베이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이들의 성과를 같은 수준으로 비교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상위 무대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실전을 계속 치렀다는 점이다. 상대의 공에 적응하고, 자신의 약점을 확인하고, 다음 대회에서 보완한 내용을 시험하는 시간이 축적됐다.
한국 테니스가 이번 가을의 성과를 이어가려면 이런 과정이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투어 경험이 풍부한 선수에게는 경기력을 유지하고 끌어올릴 여건이, 상위 무대에 진입하려는 선수에게는 도전을 반복할 여건이 필요하다.
상금보다 먼저 정해지는 일정
투어 생활에서 비용은 경기 결과에 앞서 발생한다. 항공편과 숙소를 확보해야 하고 코치와 동행하려면 추가 경비가 필요하다. 실제 부담은 대회 등급과 이동 거리, 체류 기간, 주최 측의 숙식 제공, 소속팀과 후원사의 지원 범위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특정 랭킹 아래 선수들은 모두 적자라거나, 하위 대회에서는 우승해도 원정비를 감당할 수 없다고 일괄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먼저 확인할 것은 선수별로 어떤 비용을 부담하고, 그 부담이 출전과 훈련의 선택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다.
예산과 지원 기간을 알 수 있어야 시즌 계획도 구체화된다. 자신에게 맞는 코트의 대회에 출전할지, 이동 부담이 적은 지역의 대회를 묶어 뛸지, 일정 기간 출전을 멈추고 기술을 보완할지 결정해야 한다. 부상으로 일정이 바뀌면 치료와 복귀 훈련도 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지원의 효과 역시 출전 횟수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무리하게 일정을 늘리는 것보다 필요한 훈련과 회복 시간을 확보하는 편이 선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선수와 지도자가 경기력을 기준으로 선택하고 그 결정을 실행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남녀 선수에게 공통으로 필요한 것은 이런 예측 가능성이다. 다만 지원 방식까지 같을 필요는 없다. 투어 복귀를 준비하는 선수와 국제대회에 적응하는 유망주에게 필요한 일정과 인력은 다르다. 현재 랭킹뿐 아니라 성장 단계와 실제 수요를 함께 살펴야 한다.
원정비와 코치 선임은 연결돼 있다
출전 기회를 마련한 뒤에는 그 경험을 경기력으로 연결할 지도 체계가 필요하다. 경기에서 드러난 문제를 분석하고 다음 훈련에 반영해야 한다. 원정 경비를 지원하면서 코치 동행과 훈련 여건을 함께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구연우의 사례는 기업 후원이 경기 준비에 연결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2025년 구연우는 CJ제일제당의 후원 아래 두 명의 코치와 트레이너로 팀을 꾸렸다. 당시 타이베이 대회 우승 뒤 인터뷰에서는 기술 훈련과 체력 강화, 심리적 지원을 각각 언급했다. 선수 한 명의 준비 과정에 서로 다른 전문성이 투입된 사례다.
모든 선수에게 같은 구성을 적용할 수는 없다. 코치를 선임할 때는 선수에게 필요한 과제부터 정해야 한다. 서브와 리턴을 보완해야 하는지, 체력과 회복 관리가 시급한지, 상대 분석과 일정 운영에 도움이 필요한지에 따라 적합한 지도자와 역할이 달라진다.
평가 방식도 맡긴 과제에 맞춰야 한다. 장기적인 기술 수정을 주문해놓고 몇 개 대회의 승패만으로 판단하면 훈련의 연속성을 지키기 어렵다. 선수와 지도자가 수행할 과제와 기간을 합의하고, 경기에서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전문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운 선수들을 위해서는 공동 지원도 검토할 수 있다. 비슷한 지역의 대회를 뛰는 선수들이 체력·재활 인력을 함께 활용하거나 주요 원정 구간에 지원을 집중하는 방식이다. 다만 경기 일정이 겹칠 때의 지원 기준과 개인 코치와의 역할 분담이 명확해야 한다. 인력을 확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운영해야 한다.
남녀의 성과를 더 넓은 선수층으로
남자 대표팀이 이번에 확보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현재 선수들의 투어 활동을 뒷받침하는 동시에 뒤를 이을 선수층을 넓혀야 한다. 여자 선수들에게도 투어 본선 승리가 이후의 꾸준한 도전으로 연결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
이 과제는 주니어에서 성인 무대로 넘어가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주니어 성적만으로 성인 대회에서 자리 잡을 시기를 예상하기는 어렵다. 더 강한 상대의 공과 경기 운영, 긴 시즌에 적응하려면 기술·체력 훈련과 적절한 수준의 실전 경험이 함께 필요하다.
지원 기준이 당장의 순위와 입상 실적에만 쏠리면 이런 전환기의 필요를 놓칠 수 있다. 국제무대에 적응하는 선수와 이미 투어에 정착한 선수에게 같은 결과를 요구하기는 어렵다. 성장 단계에 맞춰 목표를 정하고, 훈련 과제의 수행 정도와 더 높은 수준의 상대에 대한 경쟁력을 함께 살펴야 한다.
국내 국제대회는 이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다. 권순우가 우승한 광주 챌린저와 백다연이 정상에 오른 안동·창원 ITF 대회는 국내에서도 국제 경쟁을 이어갈 수 있는 무대다. 코리아오픈의 와일드카드는 여자 선수들에게 투어 본선을 경험할 기회가 됐다.
다만 개최 자체가 육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어떤 선수에게 출전 기회를 주고, 경기 뒤에는 무엇을 훈련하며, 언제 해외 도전을 넓힐지 연결해야 한다. 국내 대회 일정과 육성 계획을 함께 검토할 때 개최의 효과도 더 구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기업이 지원할 수 있는 것은 한 시즌이다
이 과제를 협회와 소속팀의 몫으로만 남겨둘 수는 없다. 선수들의 국제무대 성과에 관심이 모인 지금, 일반 기업의 지원도 더 넓어질 필요가 있다. 대회와 스타 선수에게 집중된 관심을 원정과 훈련, 차세대 육성으로 연결할 기회다.
지원 방식은 다양하다. 특정 선수의 시즌 원정비나 코치 동행 비용을 맡을 수 있고, 여러 유망주가 활용할 체력·재활 프로그램을 후원할 수도 있다. 항공·숙박·의료처럼 기업의 사업과 연결되는 지원도 가능하다. 선수에게 필요한 항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기업 역시 자신의 역량에 맞는 참여 방식을 찾기 쉬워진다.
기존 지원의 성격부터 구분해 볼 필요도 있다. 실업팀 소속과 개인 후원은 계약과 책임의 범위가 다르다. 백다연의 NH농협은행 소속, 박소현의 강원특별자치도청 소속, 구연우의 CJ제일제당 후원을 동일한 구조로 설명할 수는 없다. 각각 어떤 부분을 지원하고 무엇이 선수의 부담으로 남는지 파악해야 추가 후원도 필요한 곳에 배치할 수 있다.
기업 참여를 요청하는 테니스계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지원 대상과 사용 목적, 훈련·출전 계획을 설명하고 집행 과정을 투명하게 공유해야 한다. 지원을 통해 어떤 훈련 환경과 경기 경험을 확보했는지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과정이 쌓여야 후원이 일회성 지원을 넘어 장기적인 관계로 이어진다.
특히 유망주 후원은 성적이 나오기 전의 시간을 포함해야 한다. 성과를 거둔 선수에 대한 보상과 함께, 성인 무대에 적응하는 선수에게도 도전을 이어갈 여건이 필요하다. 기업이 일정 기간의 성장 계획을 함께 뒷받침한다면 선수는 다음 대회를 넘어 다음 시즌을 준비할 수 있다.
소집이 끝난 뒤에도 이어져야 할 지원
중장기 전략의 출발점은 현재의 지원을 점검하고 책임을 구체적으로 나누는 일이다. 협회와 소속팀, 기업이 원정 경비와 지도 인력, 유망주의 성인 무대 정착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 정해야 한다. 지원 대상과 기간을 명확히 하고 부상이나 일시적인 부진에 적용할 기준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11월 볼로냐에서 한국은 이탈리아를 상대로 데이비스컵 8강전에 나선다. 코리아오픈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여자 선수들도 각자의 다음 무대를 준비한다. 이들의 경쟁력은 한 대회가 끝난 뒤에도 이어지는 훈련과 출전 속에서 다듬어진다.
이번 가을의 성과를 계기로 선수들이 다음 시즌을 더 안정적으로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한 지도와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후배들도 자신의 수준에 맞는 국제대회 경험을 쌓도록 지원을 연결해야 한다. 남녀 테니스가 함께 앞으로 나아갈 기반은 그 준비 시간을 얼마나 꾸준히 뒷받침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