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P는 2025년부터 투어 레벨 전 대회에 전자 라인 판정을 의무화했다. 윔블던까지 라인심판을 없앤 지금, 롤랑가로스는 여전히 인간의 눈을 선택하고 있다.

“OUT!”

테니스 경기에서 가장 익숙한 소리 가운데 하나다.


시속 200km가 넘는 서브와 빠른 랠리 속에서 공이 라인 근처에 떨어지면, 코트 가장자리에 앉아 있던 라인심판은 순식간에 인과 아웃을 판단했다. 선수가 판정에 동의하지 않으면 주심을 바라봤고, 호크아이 챌린지가 허용된 대회에서는 전자 판독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제 이 풍경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ATP는 2025년부터 코트 표면과 관계없이 모든 ATP 투어 레벨 대회의 전 경기 코트에서 Live Electronic Line Calling, 이른바 ‘Live ELC’를 의무화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남자 프로 투어에서는 이제 기계가 처음부터 라인을 판정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사람의 판정을 돕던 기술에서, 사람을 대신하는 기술로 전자 기술이 처음 테니스 판정에 들어왔을 때 기계는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대표적인 것이 호크아이와 챌린지 시스템이다. 라인심판이 먼저 판정을 내리고, 선수가 이의를 제기하면 전자 시스템으로 공의 착지 지점을 다시 확인했다.


즉, 사람이 먼저 판정하고, 기계가 그 판정을 검증했다. 하지만 2017년 밀라노에서 열린 초대 Next Gen ATP Finals에서 구조가 달라졌다. ATP는 모든 라인의 판정을 전자 시스템에 맡기는 방식을 시험했다. 공이 라인 밖으로 벗어나면 녹음된 음성이 “OUT”을, 서브가 벗어나면 “FAULT”를 알렸다.


기존 챌린지처럼 선수가 판독을 요청할 필요도 없었다. 처음부터 기계가 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실험이었지만, 8년 뒤 이 시스템은 ATP 투어 전체의 표준이 됐다.


코로나19 이후 빨라진 전환

Live ELC 확산의 속도를 크게 높인 계기 가운데 하나는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코트 위 인원을 줄여야 했던 상황에서 라인심판 없이 경기를 운영할 수 있는 전자판정의 장점이 더욱 분명해졌다. US오픈은 2020년 아서 애시 스타디움과 루이 암스트롱 스타디움을 제외한 대부분의 경기 코트에서 실시간 전자 라인 판정을 사용했고, 2021년부터는 전 경기 코트로 확대했다.


호주오픈 역시 2021년부터 모든 경기 코트에서 Live ELC를 사용했다. 전자판정은 더 이상 실험이 아니었다. 그리고 2025년, 가장 상징적인 대회 가운데 하나까지 움직였다.


윔블던에서도 라인심판이 사라졌다

윔블던은 2025년부터 예선과 본선을 포함한 모든 경기 코트에 Live ELC를 도입했다. 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라인심판 없이 경기가 운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직전까지 약 300명의 라인심판 인력이 대회 운영에 참여했지만, 전자판정 도입 이후 약 80명 규모의 ‘Match Assistant’ 인력이 주심 지원과 시스템 이상 대응 등의 역할을 맡게 됐다.


사람이 경기 운영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공의 착지 위치를 직접 판단하던 역할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렇다면 전자판정은 오심 논란까지 없앴을까. 2025년 윔블던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기계도 완벽하지 않았다

여자 단식 16강에서 아나스타시야 파블류첸코바와 소네이 카르탈이 맞붙었을 때, 카르탈의 공이 베이스라인 밖으로 벗어난 것으로 보였지만 아웃 콜이 나오지 않았다. 조사 결과 해당 구간에서 전자판정 시스템 일부가 사람의 조작 오류로 비활성화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회 측은 사과했고, 이후 운영자가 경기 도중 해당 기능을 임의로 끌 수 없도록 절차를 바꿨다. 이틀 뒤 열린 테일러 프리츠와 카렌 하차노프의 남자 단식 8강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랠리 도중 전자 시스템이 갑자기 “FAULT”라고 콜했고, 주심은 해당 포인트를 다시 진행하도록 했다. 전자판정이 사람보다 일관된 기준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시스템과 운영 과정 역시 오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 장면이었다.


그래도 ATP가 전자판정을 선택한 이유

ATP가 밝힌 Live ELC 전면 도입의 핵심 이유는 정확성과 일관성이다. ATP는 팬을 포함한 테니스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라인 판정 시스템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정확성과 일관성이 꼽혔다고 설명했다. 대회마다 다른 심판진이 들어가고, 코트마다 다른 사람이 판정을 하는 것보다 하나의 기술적 기준으로 모든 공을 판단하는 편이 더 일관적이라는 논리다.


전자판정 시스템은 단순히 인과 아웃만 판정하는 장비도 아니다. 선수와 공의 움직임을 추적하기 때문에 경기 데이터와 퍼포먼스 분석에도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논리는 클레이코트에 들어가면 조금 복잡해진다.


클레이에서는 왜 논쟁이 계속될까

클레이코트에는 다른 표면에는 없는 특징이 있다. 공이 떨어진 자리에 흔적이 남는다. 그래서 오랫동안 판정 논란이 생기면 주심이 직접 내려와 볼 마크를 확인했다. 현재는 클레이에서도 Live ELC 사용이 가능하다. ATP 역시 2025년부터 클레이를 포함한 모든 표면의 투어 레벨 대회에서 전자판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2026년 마드리드 오픈에서 엘레나 리바키나가 정친원의 서브에 내려진 인 판정에 항의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리바키나는 전자 시스템이 보여준 착지 위치와 클레이에 남은 볼 마크가 다르다고 주장하며 주심에게 직접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Live ELC로 운영되는 경기에서는 주심이 내려가 볼 마크를 확인해 판정을 바꾸는 방식이 허용되지 않았다. 기계는 인이라고 했고, 선수의 눈앞에는 다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롤랑가로스는 왜 아직 인간의 눈을 선택할까

2026년 기준 네 개의 그랜드슬램 가운데 라인심판을 유지한 대회는 롤랑가로스뿐이었다. 호주오픈과 US오픈은 이미 전자판정을 사용하고 있고, 윔블던도 2025년 Live ELC를 도입했다. 단순히 전통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멜리 모레스모 대회 디렉터는 다른 클레이코트 대회들을 지켜본 결과, 전자 시스템의 신뢰도가 아직 절대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2026년 대회에서는 반대 방향의 논란도 나왔다. 카스페르 루드와 주앙 폰세카의 16강, 2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 루드가 8-7로 앞선 세트포인트 상황이었다. 폰세카의 포핸드가 라인 근처에 떨어지자 주심은 직접 내려와 볼 마크를 확인한 뒤 인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방송용 전자 트래킹 화면에서는 해당 공이 아웃으로 표시됐다. 루드는 이 세트를 내줬고, 결국 5-7, 6-7(8), 7-5, 2-6으로 패했다. 마드리드에서는 주심이 볼 마크를 직접 볼 수 없어 논란이 됐고, 롤랑가로스에서는 주심이 직접 확인했는데도 논란이 생겼다.


이 두 장면은 클레이코트 판정 문제가 단순한 ‘인간 대 기계’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롤랑가로스는 2026년 인간 심판 체계를 유지했지만, 2027년에도 같은 방식을 이어갈지는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


여자 투어에서도 전자판정은 확대 중

전자판정의 흐름은 남자 투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25년 찰스턴 오픈은 WTA 투어의 클레이 대회 가운데 최초로 예선과 본선 전 경기에 ELC Live를 도입했다. 같은 시즌 마드리드와 로마 WTA 1000 대회에서도 전자판정이 사용됐다. 여자 투어에서도 적용 범위는 계속 넓어지고 있다.


사라진 것은 판정만이 아니다

전자판정은 정확성과 효율성을 높였지만, 테니스의 익숙한 장면도 함께 바꿨다. 선수가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챌린지를 신청한 뒤 전광판을 바라보고, 공의 궤적이 나타나는 순간 관중이 환호하던 장면이다. ATP도 2017년 Next Gen ATP Finals에서 Live ELC를 시험할 당시 이런 관람 경험을 고려했다.


라인에서 5cm 이내에 떨어진 가까운 공은 자동으로 전광판에 그래픽을 보여주도록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전자판정은 테니스를 더 빠르고 일관되게 만들었지만, 경기의 작은 의식 하나도 함께 바꿔놓았다.


다음은 주심의 영역이다

기술의 역할은 라인 판정에서 끝나지 않고 있다. 공이 두 번 튀었는지, 선수나 라켓에 닿았는지, 상대 플레이를 방해했는지 같은 상황은 여전히 주심의 판단이 필요하다. ATP는 이런 판정을 돕기 위해 Video Review를 확대하고 있다.


2018년 Next Gen ATP Finals에서 처음 시험된 뒤 2025년 모든 ATP Masters 1000 대회로 확대됐고, 2026년에는 ATP 500으로 넓어졌다. 2027년에는 ATP 250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윔블던 역시 2026년 센터코트를 포함한 주요 6개 코트에 Video Review를 도입했다.


테니스는 이제 사람의 라인 판정을 기계로 바꾼 단계를 넘어, 주심의 판단까지 기술로 보조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라인심판은 정말 사라지는 것일까 세계 최상위 프로 무대만 보면 방향은 분명하다. ATP 투어에서는 Live ELC가 표준이 됐고, 호주오픈과 US오픈에 이어 윔블던까지 전자판정을 선택했다.


하지만 테니스 전체에서 라인심판이라는 존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ATP 챌린저에는 여전히 라인심판 관련 규정이 남아 있고, 2026년 롤랑가로스에서는 사람의 눈이 인과 아웃을 결정했다.


그래서 현재의 변화를 단순히 ‘기계가 심판을 없애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은 조금 부족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테니스에서 사람이 직접 공의 착지 위치를 판단하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전자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예외 상황을 해결하는 주심도 필요하다. 인간 심판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바뀌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여전히 한 가지 질문은 남는다.


인간의 눈과 기계의 눈.

어느 쪽이 완벽한가.


2026년의 테니스가 보여주는 답은 간단하다. 어느 쪽도 완벽하지 않다. 사람도 틀릴 수 있고, 기계도 틀릴 수 있다. 다만 세계 테니스가 선택하고 있는 방향은 분명하다. 코트 모서리에 몸을 낮추고 앉아 한 점만 바라보던 사람들.


그리고 경기장을 울렸던 짧고 강한 한마디.

“OUT!”

테니스에서 너무나 익숙했던 이 풍경은 조금씩 역사의 한 장면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