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서울의 랜드마크 한가운데 테니스 코트가 등장한다.


2023년에는 광화문광장, 2024년에는 올림픽공원 평화의광장, 2025년에는 반포한강공원 예빛섬. 그리고 2026년에는 여의도공원 문화의마당이다.


장소는 매년 달라졌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하나의 이름이 있었다. ‘화이트오픈서울(WHITE OPEN SEOUL)’.


휠라(FILA)가 2023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테니스 페스티벌이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해진다. 휠라는 왜 매년 서울 한복판에 테니스 코트를 만들고 있을까?


휠라에게 테니스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휠라와 테니스의 인연은 1970년대로 이어진다. 당시 테니스는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인 스포츠였다. 흰색을 중심으로 한 복장이 코트의 오랜 전통이었고, 선수들의 스타일 역시 그 틀 안에 머물러 있었다.


휠라는 1974년 ‘WHITE LINE’을 선보이며 여기에 변화를 줬다. 전통적인 화이트를 기반으로 컬러와 디자인을 더했고, 당시 세계 테니스를 대표하던 비외른 보리와 함께 휠라 특유의 테니스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결국 테니스는 휠라에게 수많은 스포츠 종목 가운데 하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브랜드가 어떤 방식으로 스포츠와 패션을 연결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헤리티지다.


WHITE LINE에서 WHITE OPEN으로?

그래서 ‘화이트오픈’이라는 이름도 흥미롭다. 과거의 ‘WHITE LINE’이 테니스 코트 위에서 기존의 스타일에 변화를 줬다면, 지금의 ‘WHITE OPEN’은 테니스가 존재하는 공간 자체를 넓히고 있다.


전문 선수들만 들어갈 수 있는 경기장이 아니라 누구나 지나갈 수 있는 광장과 공원으로 테니스 코트를 가져온 것이다. 2023년 그 첫 번째 장소는 광화문광장이었다. 서울을 대표하는 공간 한복판에 테니스 코트가 만들어졌고, 시민들은 굳이 테니스장을 찾아가지 않아도 테니스를 만날 수 있었다.


라켓을 잡아보기도 하고, 경기를 구경하기도 하고, 우연히 광장을 지나가다 잠시 테니스 코트 앞에 멈춰 서기도 했다. 테니스를 좋아하는 사람을 행사장으로 부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테니스를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져간 셈이다.


매년 서울의 다른 공간을 찾는 이유는?

흥미로운 점은 화이트오픈서울이 한곳에 정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4년의 장소를 연결해보면 화이트오픈서울이 무엇을 하려는 행사인지 조금 더 선명해진다.


테니스 코트를 하나의 목적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를 '테니스의 무대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화이트오픈서울에서 테니스는 점점 경기만을 의미하지 않게 됐다.


테니스 레슨과 셀럽 매치, 서브 스피드 측정 같은 프로그램뿐 아니라 테니스화 커스텀, 피클볼 체험, 음악 공연 등 다양한 콘텐츠가 행사 안으로 들어왔다.


라켓을 들고 직접 플레이하는 사람과 테니스를 구경하는 사람, 음악을 즐기러 온 사람까지 같은 공간에 머물게 된다. ‘보는 테니스’와 ‘하는 테니스’, 그리고 ‘즐기는 테니스’가 하나의 축제 안에서 만나는 것이다.


테니스화를 파는 브랜드에서, 테니스 문화를 만드는 브랜드로

물론 휠라도 스포츠 브랜드다. 테니스화와 의류를 판매해야 하고 새로운 제품을 알려야 한다. 2026 화이트오픈서울 역시 신제품 ‘AXILUS PRO 4’와 연결된다. 제품 구매 후 공식몰에 착화 리뷰를 남긴 고객 가운데 우수 리뷰어를 선정해 이형택 감독을 비롯한 휠라 테니스 앰배서더들과 함께할 수 있는 특별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하지만 화이트오픈서울 전체를 하나의 제품 프로모션으로만 보기에는 규모와 방향이 다르다. 오히려 휠라가 지난 4년 동안 반복해서 쌓고 있는 것은 하나의 이미지에 가깝다. ‘휠라가 있는 곳에 테니스가 있다.’


테니스화를 잘 만드는 브랜드가 되는 것과 사람들이 테니스를 떠올렸을 때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브랜드가 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제품의 기능은 경쟁 브랜드가 따라올 수 있다. 새로운 디자인도 언젠가는 익숙해진다.


하지만 특정 스포츠와 브랜드 사이에 만들어진 문화적 연결은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년 서울의 상징적인 장소에 테니스 코트를 만들고 사람들이 직접 테니스를 경험하도록 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을 것이다.


휠라의 테니스 헤리티지를 과거의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소비자가 경험할 수 있는 문화로 다시 만드는 것. 화이트오픈서울은 그 접점에 있다.


그리고 2026년 화이트오픈서울은 10월 10일부터 11일까지 이틀간 여의도공원 문화의마당에서 열린다. 광화문에서 시작해 올림픽공원과 한강을 지나 네 번째로 도착한 장소다.


지난 4년의 흐름을 생각하면 화이트오픈서울에서 중요한 것은 유명 선수가 몇 명 등장하는지, 어떤 이벤트가 열리는지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테니스를 치지 않는 사람이 테니스를 처음 마주하고, 이제 막 테니스를 시작한 사람이 조금 더 깊이 빠져들고, 이미 테니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를 하나의 문화로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만들어지는 것. 그 경험이 해마다 조금씩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휠라가 만들고 싶은 것?

1970년대 휠라는 ‘WHITE LINE’을 통해 테니스 코트 위의 스타일에 변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 서울에서는 ‘WHITE OPEN’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에는 옷이 아니라 테니스가 존재하는 공간의 경계를 넓히는 일이다.


광화문에서 올림픽공원으로, 한강에서 다시 여의도로. 그렇게 매년 서울 어딘가에 테니스 코트를 만드는 이유는 어쩌면 단순하다. 테니스화를 파는 브랜드를 넘어, 테니스 문화를 만드는 브랜드로 남기 위해서 '2026년 10월' 이번에는 여의도 한복판에 다시 테니스 코트가 들어선다.